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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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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합니다.
by 무식


이미 아는 것에 대해 묻지는 않는다 실수담

하루는 환자  분이  시간이 지나도 코피가 멎지 않아 상당량의 피를 잃고서 입원했습니다심장계열의 질환으로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계셨던 데다가  시도했을  압박이 충분치 않아 출혈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코에 넣는 풍선형 지혈팩을 한껏 부풀려서 다음 날까지 출혈부위에 굉장히 많은 압박을 가해야만 했지요 정도로 지혈팩을 부풀리면 불편한  둘째치고 상당히 아픕니다.

 

다음  아침에 병동으로 출근해보니 간호사 분들이 어제  환자가 다시 지혈팩 사이로 출혈하기 시작했으니 빨리 다시  봐달라고 급히 청하셨습니다아침 일찍 출혈이 다시 시작했을 때부터 야간 당직팀이 리뷰하기에는 아침 인수인계까지 남은 시간이 짧아서마침 제가 전날 환자를  탓에 케이스를  알고 있어서 병동 간호사 분들이 일부러(!) 기다리신  같아요 분의 침대로가보니환자는 인사도 드리기 전에 제게 입과 코에서 피를 튀겨가며 고래고래 고함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알면서도 나한테  ㅈ같은 고통을  겪게 만들었지?!  아무 이유도 없이  짓을  거야! You knew this wouldn’t work, but you left me in this fucking pain anyway! You did this for nothing!” 저는 불편하셨던 것에 대해 일단 사과드리고제가  어제  치료를 했는지그리고 다시 시작된 출혈을 멈추기 위해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차근차근 설명해서1 환자의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했습니다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건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환자 분은 계속 제게 소리만 지르시는 거에요저는 속으로  환자에게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지금 상황에 적합한 치료계획을  기울여 듣고 싶어하지 않는 상태인 것은 자명한데다가무엇보다도 곳곳에 욕을 섞어가면서 굉장히 무례했거든요그분이 제게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저는 점점  의사로서의 입장과 어떻게 하면 신속하게 출혈을 멈출  있는가를 최우선시하는 입장 agenda 틀어박히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갑자기 모든 이름표가 떨어져내렸습니다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는 모르겠습니다만2남은 것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과 몹시 기분이 상한 목소리 밖에 없었지요환자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가자 이름표 또한 떨어져 나갔습니다굳이 설명을 붙여보자면하나의 이름표는 다른 이름표가 있어야만 존재할  있으니까요잠시 제가 의사 것이 멈춰지자  또한 환자 것이 멈춰졌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저는  분께 치료 옵션들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또한  설명을 귀담아 듣지 않으셔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차분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자신도 놀라면서 저는  분께 간단한 질문을 하나 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으시겠어요?3 OK. What would you like me to do for you?”

 

기적처럼 분은  즉시 고함지르는 것을 멈추시고  10 정도 조용히 계셨습니다 다음저희는 같이 치료 방침을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1. 보통 코피 치료는 수술 없이 하지만 필요할 경우 항응고제를 복용하시는 환자 분들의 수술 치료는  까다로워지는데,  당연히수술을 하자고 신체조직을 자를 경우 잘린 부위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항응고제를 중화시키는 방법도 있지만경우 항응고제가 치료하고 있던 심장질환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발생할  있습니다그러니까 저도 흐음그러면…’ 하면서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해졌던 거죠.

 

사족:

아래 부분은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되는그야말로 사족입니다어떤 분들에게는 오히려 방해되거나 ‘  괜한  하는구나라고 헛웃음하게 만들지도 몰라요그래도 읽고 싶으시면 페이지를 밑으로 내려주세요.

 

 

 

 

 

 

 

 

 

 

 

 


 

 

 



서양에서는 흔히들 ‘(북방선종은 묻는다 Zen enquires’라고들 하지만개인적으로 저는 모든 불교 전통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수행 속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화두와 공안을 참구하는 임제종은 물론이고별다른 목표 없이 귀신굴 속에 앉아있기만한다고 욕을 먹는 (일본)조동종조차도 사실 일상생활 속에 드러나 있다는 현성공안을 강조합니다저에게는  의문을 던지는 정신과 호기심 curiosity 선종의 모른다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흔히 의심이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는 doubt이라고 번역되지만개인적으로 저는 어감상 호기심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풀어쓰면 의심疑心 questioning mind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는데다가의심이 가지는 부정적인(!) 어감  감정들이 수행에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에요.)

 

모른다4 의문을 던지는 정신 사이의 관계는 흥미롭습니다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자면진솔하게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몰라야만 합니다이렇게 말하자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억지인 것처럼 들리지만사실은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가령 어떤 아이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보지요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머리 끝부터  끝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고걔가  그렇지…”라고 할지도 모릅니다얼마간은  이야기가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당연하게도맞지 않게  때까지는 말이에요. (웃음아이는 나중에 부모에게 이렇게 소리 지를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이 나에 대해  알아요내가 이런저런 일을   당신들이 생각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고요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아는  하지 말아요!” 비록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만 (웃음), 비슷한 상황에 이르러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구나그럼 어떤 사람일까?’  일본조동종 스님은  점에 대해서 이렇게 간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다. It is not always so.” 오래  어떤 분께서 남겨주신 교훈처럼모든 인간 경험은 무상하고계속 변화합니다고정된 이름표는 쉽게 부정확해질  있고부정확한 이름표에 따른 행동은 부적절해질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모른다 일단 생기고 의문이 따라오는  같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둘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쪽이 생기면 다른  쪽도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그러니까 모른다까지 기다리거나 억지로 모른다를  필요 없이그냥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요 질문 또한 억지로 던져지는 것도 아닙니다선을 수행한답시고 잘난  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원래 사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일들이니까요명상에 대한 부분을 말하자면사실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간화선이 아니라고 해도 어떤 명상이든 기저에는 의문이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마음이  조용해지고 움직임이 가라앉으면  마음이 경험하는 것들의 색채도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잖아요다른 것을 경험할  인간 마음은 다르네이건 뭘까?’라고 하기 마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질문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다른 계열의 명상 용어로 바꿔서 부드러운 주시 relaxed gaze’, ‘분별하지 않는5 태도 non-judgmental attitude’, 혹은 존재 속으로의 이완 relaxing into being’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말들이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생각으로만 돌아가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사실 저는  문제가 매우 감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딱히 장담할  없는 부분이지만 경우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이름표 그렇게  붙들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이것들은 저라는 정체성 깊숙이 짜여 넣어져 있어서저는 종종 생각이나 이름표가 바로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생각이나 이름표가 도전 받거나 틀린 것으로 판명난다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가령저는 외과의이고선원에 속한 수행자입니다만약  의사 등록이 말소되고 선원에서 쫓겨난다면 저는 매우 고통스러워  가능성이 큽니다 서양인 금강승 스님의 고통은 출가    남편이 바람피운 것을 알게  이후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동료의 경우는 우울증이었고요.

 

우울증을 겪기 전까지  동료는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별안간  이상 그럴  없게  상황에 직면하자 매우 고통스러워 했습니다하루는 제게 울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건 내가 아니야! This is not who I am!” 참으로 안쓰러웠습니다. “이건 내가 아니야나는 이런  싫어지금의  너무 낯설어이런 형편없고 불만족스러운  예전의  너무 달라.” 제가 겪은 자기 혐오를 기반해서 말해보자면이런 경우 일어나는 다툼 다른 사람과 자신 사이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 벌이는 다툼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다른 사람이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고립시키기 때문에 더욱  외롭기도 합니다서구의 불교 지도자들은 이런 삶의 힘든 부분들을 다양하게 묘사했습니다 밑이 꺼지는 느낌세상이 무너지는 느낌무저갱으로 떨어지면서 아무 것도 붙잡을 것이 없는  같은 느낌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 아무 것도 확실하지가 않아서 아무 것도   없는 느낌이런 느낌과 감정들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그런 일들이 이미(!) 벌어지는 중이더라도 그런 감정들에게서 도망치려고 하는  또한 이해할 합니다 스승의   분은 이에 대해 이렇게 평하셨습니다. “실재에 대한 끝이 없는 법정 소송.” 당연하게도그런 소송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웃음)

 

하지만 바로  이건 내가 아니야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붙들고 있었던 이름표를 내려놓고 떠날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문의 반대쪽에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내가 아니라면나는 무엇인가?”  질문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합니다어떤 불교 전통에서는 내가 아니야 수행 방법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이것은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벗어나고자 지향하는 이런 깊은 고통이 수행의 동기를 제공해준다는 것은 크나큰 아이러니이지만동시에 이상한 축복(!)이기도 합니다다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최소한  경우는  경험이  자신을 솔직하게 다시 돌아보고 주변의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볼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오래  이름표가 떨어지기 전에는 진심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렵습니다마치 반창고를 한꺼번에 떼어내는 것은 아프지만 밑의 상처를     있도록해준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의문이 있는 곳에 답이 있다 어떤 스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흔히들 일본조동종의 수행방법인 지관타좌의 묵조선을 본래부처를 굳게 믿는 것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수행이라고 부르고는 합니다하지만 아무리 스승과 독참을 해봐도 듣는 이야기라고는 아니야’ 밖에 없고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장기간 계속 붙들게 되는 간화선도  생각에는 묵조선의 믿음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습니다좋은 질문은 답이 없어도 매우 가치 있는 것이고 질문 자체보다  가치 있는 것은 꾸준히 질문하는 자세이지만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의문이 있는 곳에 답이 있다라는  스님의 말씀과 동의합니다.

 

 

 

2.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라는 것은 잘난  하자고(!)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니라 정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더라고요그런데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지 않고 제가 그런 흉내를 내었다면 아마 환자 분은 제게  화를 내셨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너보다 (도덕적으로 잘났어’ 같은 분위기를 환자들은 물론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매우 민감하게 잡아내는 데다가그런 것을 싫어하는  같으니까요. (웃음)

 

또한모르는 사이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때까지  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또한 그렇게  것이 최고였다는 것도 아닙니다그러니까 제가 잘나서 다른 사람들도 저를 따라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당장 저부터 항상 이런 일을 겪으며 살지는 않습니다. (웃음어떻게든어찌 되었든결국 쌍방이 치료 방침에 동의하고 지혈을 해야 끝나는 일이었잖아요?또한그렇게 되지 않는 날이라면 어떨까요내지는그렇게 되든지 말든지 환자가 제게 끝까지 화를 내셨다면?

 

3. ‘그래서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말해봐말해보라고!!’라는 ()으로 물었다면 당연히 상황은 해결이  되었을뿐더러정말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도정말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질문이었겠지요그런 것을 가리켜 수사적 질문 rhetorical question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웃음)

 

4. 어떤 스님이 행각하는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행각하는 뜻이 무엇인가?” 행각하는 스님이 답하기를, “모릅니다.” 그러자 처음 질문한 스님이 말하기를, “모르는 것이 가장 친절하다. Not knowing is the most intimate.” 전에도 적었지만한자로는 친절이라고 쓰여있는 것이 intimate(친밀하다가깝다) 번역된 것을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아서어떤 스님은 안다면 망령되지만妄覺 모른다면 무기無記이다라고 하셨다지요저는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종종 짜증을 냈었습니다만확실히 모르고만 있는다면 저는 재가자로서의 생활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선불교는 재가자로서는 수행할  없는 길이다라고 한다면… 글쎄요저부터 그런 것은 수행하고싶지 않을  같네요. (웃음)

 

5. 영어권에서 흔히 쓰는 단어인 judgmental은 자신이 타인의 행동을 볼 때  (혹은 자신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잣대로 '이래서 좋지 않고 이래서 좋아'라고 재단하는 것을 말하는데어감상 비난과 편견을 품고 있습니다저는 번역할 말이 적당하지 않아서 한자불교권에서 흔히 쓰이는 '분별'로 번역했지만요하지만 그 어원인 judge judgment는 중립적인 '판단'이라는 의미라서저는 수행하면서 그 둘의 차이를 헷갈려 자주 실수하곤 했어요. '나는 분별하지 않기 위해 non-judgmental 판단하지 않겠어 will not judge.' 당연하게도그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면 저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마 자연에서조차 살아갈 수 없겠지요. (웃음) 이런 어리석음은 제가 괜히 제 자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분별하는(!!!) 시발점이기도 했고요예전에 적은 대로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식이기도 하고보디담마 스님께서는 '분별과 사리판단에는 차이가 있다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judgmental and judicious'라고 말씀하시더군요해독제에 다시 해독제를 주시는 격이라오해를 불러오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웃음)

 

 

 

@@@    어디선가  이야기 오래된 책에서   있어라고 생각되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가능한 인용을 피하기위해서 – 제게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남기고 싶으시다면 비밀글을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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