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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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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합니다.
by 무식


불성이 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요? 실수담

('뭔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불성과 조주무자 화두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있는 링크를 밑에 달아놓았습니다.)


셋신* 중의 이야기입니다. 스승님께서 법문하시던 중 불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제가 마주치는 아이들 중에는 선천성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나 목에 기관절개 tracheostomy 튜브를 꽂고, 심장에는 외부심방보조기(?) External Ventricular Assist Device가 달려서 온몸의 피가 가슴에 달린 기계로 순환이 되어 펄떡펄떡거리며, 산소탱크 없이는 살 수가 없고, 학습장애까지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학습장애는 태아 때 뇌의 형성과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이지 않고, 호전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기관절개 튜브로 점액 제거라도 할 때에는 얼굴을 찡그리고 꿈틀거리면서 괴로워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후, 다음 말을 차마 이어가지 못하고 40명이 넘는 셋신 참가자들 앞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울려고 한 질문도 아니고, 저는 그때까지 일상에서 우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 패닉 상태에 빠지는 중이었어요. ‘야, 야…… 야! 이러지 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고 말이에요. (돌아보면 이 때부터 좀 더 잘 울게 되었네요. (웃음) ) 하지만 패닉 상태가 아닌 부분은 패닉하는 부분이 우는 것을 멈추려 한다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아서, 결국 울면서 (일부러 소리 지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리 지르듯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견성도 하지 못해 그들의 괴로움을 덜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If they are not aware of themselves and cannot see their nature to lessen their own suffering, what use is their Buddha Nature?!”

스승님께서 조용히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어째서 그들이 괴롭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Why do you think they should not suffer?”

* 셋신은 攝心이라고 쓰는 일본말로, ‘마음을 다잡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선종에는 한국 같은 안거 기간도 있지만 중간중간 1주일씩 안거와 같은 수행 일정을 지키는 기간을 가리켜 셋신이라고 합니다. 저희 선원에서는 한 달로 줄인 하안거 외에 1년에 약 6회 셋신을 열고 있습니다.

사족:

아래 부분은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되는, 그야말로 사족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오히려 방해되거나 ‘저 놈 괜한 짓 하는구나’라고 헛웃음 하게 만들지도 몰라요. 그래도 읽고 싶으시면 페이지를 밑으로 내려주세요.

제 평생 그리스도 교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마치 이건 그리스도교인이 신에게 던지는 볼멘소리 같지요? “세상에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데 신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고 말이에요. (웃음) 저는 불교도 잘 모르는 주제에 다른 종교는 더더욱 잘 모릅니다만, 마침 이 부분은 '악의 문제 Problem of Evil (신이 전능하고 절대선이라면 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가? 악과 고통을 없앨 수 없는 신이라면 전능한 것이 아니고, 없앨 수 있지만 없애지 않는다면 절대선이 아니다)'라고 해서 유신론적인 종교에서는 2,000년이 넘게 전해내려오는 유서 깊고 까다로운 문제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활동을 하든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지요. (웃음)

서양인이신 제 사조부께서는 일본인 선승과 법거량을 하시던 중 이런 대화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일본인 선승이 “서양인들은 불성이 없다던데. The Westerners do not have Buddha Nature”라고 말하자 사조부께서 “그런 것이 나한테 왜 필요한데? Why do I need something like that?”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사조부님께서는 조주무자 공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조주에게 그 질문을 했던 승려는 사실 개에게 불성이 있는 것이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성이 있는가가 더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런 맥락에서 사실 저는 (역시, 되바라지게!) 공부 초기에 이렇게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 깨달은 도인에게 인슐린을 과다 투여해서 혈당을 극단적으로 낮추면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저혈당성 인슐린 쇼크에도 끄떡없이 ‘도인’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혈중 산소 농도(blood oxyhaemoglobin concentration)를 더도 말고 80%로 낮추면 어떨까? (보통 폐 질환이 없는 이상 최소 95%를 상회합니다. 80% 대 초반이라고 하면 인사불성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60% 대 후반으로 가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심정지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 때 깨달은 도인은 어떤 모습일까? 스승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은 없지만, 말씀드렸다면 아마 ‘망상을 쉬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에요. (웃음) 사실 이 부분은 공부를 좀 더 한 이후 독참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80세를 넘겨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른 건강 문제로 더 일찍 사망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의학 수준으로는 다양한 이유로 인한 노인성 대뇌피질 축소를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강병균 교수님은 칼럼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더군요. “깨달은 도인에게 치매가 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치매는 그 질병의 정의부터 불가역적 irreversible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잠깐 정신이 맑아지는 때가 있을지 몰라도, 점점 악화됩니다. 현재로서는 악화를 지연시키는 치료가 있을 뿐, 진행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질 법 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견성도 하지 못해 그들의 괴로움을 덜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내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제 친구는 제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무상 impermanence에서 구원이 있다고 하면, 불가역적 질환이라고 하면 무상이 통할 구석이 어디 있어??”**

다양한 의견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진정 깨달은 도인이라면 업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치매 같은 것은 걸리지 않고, 죽을 때에는 좌탈하게 되어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면 최근에 뇌졸중에서 회복 중이신 틱낫한 스님은 어딘가 덜 깨달으셨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이 깨달음의 잣대가 되는 걸까요? 혹은, ‘깨달은 도인이라고 생리학적 현실을 벗어나지는 못하니 치매가 생긴다면 치매를 벗어나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면 틱낫한 스님께는 불성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요? 아직도 불성을 가지고 계실까요? 그런 건 다 놓아두고 가장 중요한(!) 제 불성은??? (두둥!)

글쎄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는 아이들이 괴로워하면 아이들을 열심히 보살피고,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면 다른 사람을 열심히 보살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이야기에요.

** 매우 논리정연하지요? ‘이것도 지나가리라’라는 것이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데, 영원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지나가지 않는다니. 물론 제 친구는 가톨릭 신자이니 (그래도 좌선을 좋아합니다!) 그 스스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불법의 한 군데에만 초점을 맞출 때 이런 인식이 생겨나겠다 싶습니다.

@@@ 질문들은 다른 분들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 제가 실수에서 배운 부분들을 좀 더 나누기 쉽지 않을까 해서 적은 것입니다. 전에 말했듯이 누굴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웃음)

@@@ 혹 이 글 어디선가 ‘아, 이 이야기 오래된 책에서 본 적 있어’라고 생각되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인용을 피하기 위해서 – 쉿! 제게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남기고 싶으시다면 비밀글을 달아주세요.

@@@ 한국의 선가에서 스승의 스승을 어떻게 부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대강 Dharma Grandfather 법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사조부’라고 무협지 삘이 나는 단어를 적어보았습니다. (웃음)


화두 참구에 책을 끌어왔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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